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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회담: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본색을 흐리지 말라

4월 29일 윤석열-이재명 회담은 예상대로 노동계급에 이로운 결과물이 없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25만 원 지원금, R&D 예산 복원, 전세사기특별법, 채 상병 특검법 등을 요구하고, 이태원참사특별법 등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비판했다.

윤석열은 듣기만 하고 이에 일절 응하지 않으면서 ‘여야정 민생 협의체’를 제안했다.

대통령실은 만남 자체에 의의를 뒀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민생 문제와 국정 현안을 논의했다는 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둘 수 있다.”

윤석열은 ‘쇼통’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복합 위기 속에서 기업주들을 지원하기 위해 계급전쟁을 벌이겠다는 국정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다.

이재명은 국정 운영에 책임성을 발휘하는 것과 개혁 염원의 대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출처 대통령실

벌써부터 공공요금 인상, 연금·노동 개악 등을 추진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총선 때 ‘대파 소동’을 치르고도 윤석열은 총선이 끝나자마자 재정 긴축 기조를 재확인하고 5월 1일부터 가스 요금을 올리려 했다.(그러나 반발이 두려워 인상을 4월 29일 일단 연기했다.)

여권 재편도 권력 누수를 막을 친위 체제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진석을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한 데 이어 경찰 정보라인 출신인 이철규가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출마하려 한다. 둘 다 원조 윤핵관이다. 4월 29일 여당 새 비대위원장에 이 둘과 가까운 황우여가 지명됐다.

회담 후 민주당은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소통[을 이어 나갈] 필요성에 서로 공감했다”고 밝혔다.

이재명은 국회 다수당의 대표자로서 국정(지배계급의 정치다!) 운영에 책임성을 발휘하는 정치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지지자들에게 개혁 염원을 대변하는 모습도 보이려고 줄타기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진보당 등이 영수회담을 환영한 것은 이재명의 이런 책략을 용인하는 것이었다.(회담 종료 후에는 그저 윤석열을 규탄했다.)

그러나 이재명의 이런 책략은 지배계급을 현혹시키거나 윤석열을 곤란하게 하기는커녕 자기 지지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계급 적대를 무디게 만들 뿐이다.

트로츠키는 일찍이 이런 책략(소위 ‘화전양면’ 작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계급은 속일 수 없다. 역사적으로 고찰하면 이는 모든 계급에 적용되며, 특히 지배·유산·착취·교양 계급에는 즉각적으로 들어맞는 얘기다. 그들의 세계적 경험은 풍부하고, 계급 본능은 정확하며, 휘하의 정보기관들은 다양하다. 그래서, 마치 딴 사람인 척하며 그들을 속이려 든다면 실제로는 적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친구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결과를 빚게 되고야 만다.”

마치 윤석열 퇴진을 말하면서도 영수회담을 환영하는 개혁(개량)주의 지도자들을 겨냥해 쓴 듯하다.

이재명은 대화의 ‘진정성’을 보이려는 듯, 윤석열의 의대 증원 계획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은 필요한 일이고 의사들의 반발은 지지할 수 없지만, 윤석열식 의대 증원 계획도 의료 공공성 확보를 위한 개혁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윤석열의 계획을 기본적으로 지지하는 태도는 잘못이다.(두 당은 그저 증원 규모만 달리할 뿐이므로 이런 지지는 이 문제에서 궁지에 몰린 윤석열에게 출구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연금 개악에 협조하겠다고 이재명이 말한 것이다. 물론 국회 연금특위가 제안한 두 방안(‘더 내고 더 받는 안’과 ‘더 내고 그대로 받는 안’) 중 국민의힘은 후자를 선호하고, 민주당(과 개혁주의 단체들)은 전자를 선호한다.

그러나 두 방안 모두 노동계급 등 서민층에겐 이로울 게 없다. 전자의 안은 보험료를 현재의 절반 가까이 인상해야 하고,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대해서는 보완책이 없다. 두 당이 연금 개악을 합의해 처리하기로 하면, 민주당이 지지하는 방안보다도 더 나쁜 안으로 절충될 공산이 크다. 전세사기특별법처럼 말이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영수회담에서 야권이 한목소리를 내자면서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는데, 윤석열 탄핵 추진을 공약한 것을 무색케 하는 제안이었다.

시간 낭비

노동운동과 좌파는 노동계급을 혼란시킬 뿐인 영수회담을 환영하며 결과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국민의힘의 총선 참패를 이용해 생계비 하락에 저항하는 투쟁을 이끌려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방침일 것이다.

그러나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유리한 분위기를 이용해서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전진시키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자 오히려 우파가 반격을 개시했다. 국민의힘이 장악한 서울시의회가 학생인권조례와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조례를 폐지했다.

민주노총 상근간부 다수와 진보당은 민주당과의 공조로 개혁입법도 통과시키고, 자신들의 입지도 다질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공격에 맞서는 과정에서 민주당과의 공조가 불가피할 때조차 민주당에 대한 비판을 삼가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포퓰리즘 전략을 구사해 개혁입법을 약속하고 대단찮은 실천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본가 계급에게 인정받아 집권당이 되려는 친자본주의 정당이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국민의힘보다 위기에 처한 한국 자본주의를 더 잘 관리할 수 있다고 지배계급에 호소한다.

그래서 우파 정부에 맞설 때조차 일관성이 없고 자주 노동계급의 뒤통수를 쳐 왔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초반에는 이런 배신을 소수파 야당인 탓이라고 핑계를 댔다.

문재인 정부하에서는 다수파 여당이었는데도 개혁 염원을 배신하고 개악을 추진했다. 그러고는 그때의 개혁 배신이 검찰을 앞세운 적폐 세력의 탓이었다고 또 핑계를 대고 있다. 180석 가까이를 가졌던 21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이 국회 과반이었는데도 화물 노동자들의 투쟁을 배신하고 안전운임제 폐지를 묵인했다. ‘전세사기특별법’은 여야 합의 과정에서 누더기가 됐다.

윤석열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야 기업주들이 반대한 노조법 2·3조 개혁(일명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 입법은 실패했지만 민주당은 개혁적이라는 외양을 얻어 선거에서 노동자들의 표를 얻을 수 있었다.

노동운동은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원안을 삭감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압력에 순응했고, 따라서 독자적 계급투쟁도 벌이지 않았다.

이처럼, 계급 협력은 지배계급 측의 협력 파트너를 위해 노동자 운동의 고유한 요구와 전투성을 제한하게 만든다.

민주당을 이용해 개혁입법도 하고 좌파의 입지도 확보하겠다는 구상은 노동운동의 투쟁성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오히려 민주당을 ‘진보’로 색칠해 주는 효과를 내며) 좌파 정당들 자신의 기반도 잠식할 것이다.

민주당 정부가 개혁을 배신하는 상황에서 그런 노선을 앞장서 추진했던 정의당은 이번에 의석을 전부 상실했다. 진보당은 민주당이 뜨는 상황에서 선거연합을 해 의석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야금야금 계속 배신을 때릴 것이다. 가끔 반전 시도로 잃은 점수도 만회하려 하면서 말이다.

민주당이 노동계급에 이로운 개혁보다 자본가의 이윤 지키기에 더 관심을 기울여 노동계급 대중으로부터 불신받는다면, 이번에 진보당의 성공을 보장해 준 전략은 그 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선거적 대안(세력 연합) 모색이 아니라 생계비 저항에 적극 나서야 한다.